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나라 군대 (문단 편집) === [[고구려]] 유래설 === 비록 고구려가 668년에 나당 연합군에 멸망당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 고구려는 당나라를 맞아 큰 승리를 거두었고 하니 고구려 입장에서 당나라군대 이미지는 [[오합지졸]]로 보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사서를 보면 [[고구려-당 전쟁]] 때 당나라가 거의 매 전투기록이 승리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당나라 입장의 기록만 적혀있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즉, 양쪽 나라에서 교차 검증이 되어야 확실하다. 하다못해 현대의 물리적 충돌만 해도 양측 주장이 판이한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당태종은 역사왜곡을 시도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김부식]]도 [[삼국사기]]에서 "[[유공권]]의 소설에 당나라 군대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 상황이 묘사되어 있는데 중국 사서에는 없으니 지들이 부끄러워 숨긴 게 아니냐?"고 깠다. 중국에서조차 당나라 교환비가 40배에 승률이 압도적이라는 부분은 내세우거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만 당대부터 고구려에 발린것만 기억했을 정도다. 그나마도 나당 연합군이 굉장히 고전 끝에 멸망시킨 것이다. 한 예로 당나라 군은 667년 2월에 신성을 공략했는데 그 성 하나 깨는데 무려 7개월이나 허비했고 그나마도 [[사부구]]라는 역적의 도움으로 겨우 함락시킨 것이다. 수도인 평양성도 1년 가까이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다가 역시 [[매국노]] [[땡중]] [[신성(승려)|신성]]을 회유해 성문을 열게 해서 겨우 함락시킨 것이다. 이때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해 동원한 총병력만 무려 50만 명에 달했다. 수나라 100만 대군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50만 명은 굉장히 많은 병력이다.[* 병력 동원규모가 비교 할 수 없이 커진 현대전에서도 50만이면 웬만한 국가의 상비군급 규모를 훨씬 상회하는 숫자다.] 고구려가 멸망한 것은 국력의 심한 소모도 있었지만 내부분열이 더 큰 원인이었다. 박근형 저 <중국 읽어주는 남자>에서도 당나라 군대라는 속어의 유래를 고구려에서 찾고 있다. 게다가 아동을 위한 위인전이나 사극에서도 고구려 인물의 뛰어남을 부각시키기 위해 당나라 군대는 무능하고 늘 패배하는 등 이미지가 영 좋지않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조(조선)|정조]]가 경연에서 당나라 군대의 연패에 대해 논하는 것을 보면(정조실록 3권, 정조 1년 2월 1일 정유 4번째기사) 민중들 뿐만 아니라 식자층들에게도 '당나라 군대'는 오합지졸로 이미지가 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고구려에서 유래 되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